살다 보면 누군가 정해둔 답을 따라가는 일이 더 쉬워 보일 때가 있다. 시간이 부족할 때는 더 그렇다. 빨리 결과를 내야 하고,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될 때는 이미 잘 알려진 방식, 이미 누군가 해놓은 길을 선택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면, 때로는 쉽고 안전한 길보다 낯설고 더딘 길을 고르게 된다. 그 선택이야말로 사람을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현재 청소년 일러스트 자치기구 ‘픽쳐스트’는 ‘전북 청소년 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맞추어, 나와 청소년들은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여러 차례 토론하였다. 처음에 나는 조금 더 수월한 방향을 떠올렸다. 기존의 민주화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인물을 제작하면 주제도 분명하고 작업도 비교적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익숙한 인물을 표현하는 일은 의미도 있고, 청소년들이 접근하기에도 한결 부담이 적어 보였다.
그런데 픽쳐스트 청소년들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알려진 인물을 단순히 그리는 데서 멈추기보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해석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각자의 그림체와 상상력, 감각을 살려 ‘민주화운동 세계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청소년의 선택이 쉽지 않아 보였다. 주제를 이해하는 시간이 더 필요했고, 여러 생각을 조율해야 했으며, 표현 방식 또한 스스로 만들어 가야 했다. 하지만 픽쳐스트는 누군가 마련해둔 틀 안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기 역량을 발휘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보고 싶어했다.
그 모습을 보며 청소년들의 변화는 거창한 외침보다 작은 선택 속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픽쳐스트는 시키는 일을 잘 해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더 어렵더라도 자신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방향을 선택했다. 단순히 그림 실력이 늘어나는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고, 자기 표현을 밀고 나가는 힘이 자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청소년들이 민주화운동을 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픽쳐스트는 주어진 주제를 과제처럼 받아들이기보다, 자기들만의 언어와 이미지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싶어 했다. 누군가의 역사를 외워서 옮기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자신들이 이해한 자유와 연대, 저항과 목소리의 의미를 그림 안에 담아보려 했다. 그렇게 청소년들은 역사 앞에서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니라,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참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늘 매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더 들기도 하고, 방향을 두고 고민이 길어질 때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택했으니 시행착오도 따른다. 하지만 바로 그런 과정 속에서 청소년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더 쉬운 길이 있는데도 자기 생각을 끝까지 붙들어 보는 경험, 서로의 다름을 조율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경험, 그리고 자신이 만든 세계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다시 질문해 보는 경험을 했다. 그 속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발현하고, 성장시키고 있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청소년의 변화란 누군가 가르쳐서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스스로 선택하고,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청소년은 가장 많이 변한다. 청소년 일러스트 자치기구 픽쳐스트는 이번 박람회 준비를 통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참여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쉽고 정해진 길보다 어렵고 낯선 길을 택한 그 마음이, 앞으로도 청소년들을 조금씩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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