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떤 가치는 말로 배울 때보다 눈앞에서 마주할 때 더 오래 남는다.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말이 실제 마음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선 작은 것을 바라보는 시간, 생명이 조용히 다가오는 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는 작고 구체적인 만남 속에서 조금씩 배울 수 있다.
다꿈 청소년 자치기구 ‘우화단’과 함께 전주에 있는 한 카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곳에는 학대받은 유기견 출신 골든리트리버 ‘달이’와 구조된 유기묘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청소년이 동물을 좋아하니 즐거운 체험이 되겠다는 정도로 생각했다. 우화단은 만화를 그리는 청소년이니 동물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일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귀여운 동물을 보고, 사진을 찍고, 서로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우화단 청소년들이 달이를 만나는 모습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달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천천히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였다. 청소년들은 처음부터 함부로 다가가지 않았다. 만지고 싶어도 먼저 기다렸고, 달이가 다가오면 그때서야 손을 내밀었다. 구조된 고양이들이 테이블 아래를 지나가거나 의자 위에 앉을 때도 청소년들은 큰 소리를 내기보다 낮은 목소리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곧바로 다가가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편안할 수 있도록 거리를 조절하는 일이라는 것을 청소년들이 몸으로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활동에서 청소년들이 배운 것은 동물이 귀엽다는 사실이 아니다. 달이와 구조된 고양이들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시간을 상상하며, 생명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돌봄과 책임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생명 윤리는 어려운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앞의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우화단 청소년들은 그날 그것을 머리보다 먼저 마음으로 배웠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왜 유기동물이 생기는지, 왜 사람은 동물을 키우다가 버리는지, 구조된 동물들은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 같은 질문들이 오갔다. 달이가 학대받은 유기견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왜 어떤 생명은 버려지고, 왜 누군가는 그 생명을 다시 돌보려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청소년들은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버릴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학대할 수 있지?”, “학대할 거면 왜 키우지?”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는 시간이 아니었다. 청소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그저 작은 생명들과 교감했다. 그 과정은 자치의 경험과도 닮아 있었다. 자치에는 사회 제도나 규칙을 만드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 사이에서 무엇이 더 나은 태도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 보는 일 역시 자치의 한 모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 안에서도 교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감에는 접촉(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사실 시민의 가치는 이런 자리에서 조금씩 자란다. '시민이 된다' 라는 말은, '사회의 규칙을 지킨다'는 말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 주변의 약한 존재를 살피고, 보이지 않는 고통에 관심을 가지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책임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일이다. 달이와 구조된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우화단의 눈빛에는 그런 변화가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우리가 생명을 돌봐야 하는지, 왜 사회가 버려진 존재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화단은 만화를 그리는 청소년 자치기구이다. 그날의 경험도 언젠가 그림 속에 다른 방식으로 남을 것 같았다.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사람 곁에 머무는 달이의 얼굴,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천천히 다가오는 고양이의 움직임, 그리고 그 앞에서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 청소년의 손. 이런 장면들은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단순한 체험‧변화 일지를 넘어, 청소년이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이 될 수 있다. 좋은 만화는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존재의 아픔을 알아차리는 마음에서도 시작된다.
물론 한 번의 방문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사람 안에 깊게 남아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그날 우화단은 동물을 귀여워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생명을 대하는 예의를 배웠다. 좋아하는 마음에도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 가까이 가고 싶을수록 먼저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 버려진 존재를 다시 품는 일이 한 사회의 성숙함과 연결된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청소년의 성장은 특별한 사건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이를 바라보고, 구조된 고양이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며, 청소년들은 자기 안의 시민성을 조용히 키우고 있었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 약한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스스로 질문하는 힘. 우화단이 그날 만화를 위한 소재를 얻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그림이 향해야 할 세계를 조금 더 넓게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작고 따뜻한 만남이 앞으로 우화단의 작품과 삶 속에서 오래 살아 움직이기를 바란다.

|